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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약혼단계에서의 소송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혼인을 약속했다가 파혼된 것을 흉으로 여기던 사회적 인식 때문일 수도 있겠고 권리의식이 부족한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상대방의 잘못으로 약혼이 파기되었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상대방이 혼인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 소송을 통해서 그 손해를 배상받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일단 상대방과 결혼을 약속하게 되면, 결혼준비에 많은 비용을 소비하고, 상대방과의 육체적 접촉을 허용하는 등 결혼에 대한 많은 기대와 신뢰이익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혼인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면 경제적 손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 또한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실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즈음은 혼인신고 없이 결혼식만 거행하거나 결혼식도 거행하지 않은 채 동거하는 부부가 많아졌습니다.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와 같이 우리가 흔히 동거라고 하는 것을 법률적으로는 사실혼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실혼도 혼인신고만 없었다 뿐이지 법률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은 이러한 사실혼에 관해서도 혼인신고를 전제로 하여 보호되는 몇 가지를 빼고는 법률혼과 동일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 배우자의 유책사유로 사실혼이 파기 되었거나 별다른 이유 없이 상대방이 사실혼관계를 파기한 경우에는 경제적 손해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 또한 큽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경우에 법에 의하여 어떠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약혼

약혼이란 당사자 사이에 장래 혼인하기로 하는 합의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약혼은 양 당사자간의 합의로 성립하는 것이므로 약혼식을 거행하였는지 여부는 불문합니다. 양당사자 사이에 장래에 혼인하기로 하는 합의가 일단 성립되면, 약혼해제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약혼해제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방당사자가 이유 없이 혼인을 성립시킬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고의과실에 의하여 약혼해제사유를 발생시켰을 경우에는 책임 있는 당사자에 대하여 위자료청구는 물론 혼인 준비 비용 등의 재산상 손해까지 그 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혼인을 전제로 교부한 예물 예단비 또한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실 있는 당사자로부터 교부받은 예물 예단비 등은 그에게 반환하지 않아도 됩니다(대법원 1976. 12. 28. 선고 76므41 판결).

어찌 보면 이혼에 있어서 유책배우자의 책임보다도 약혼에 있어서 과실 있는 당사자가 받는 타격이 더 큽니다. 왜냐하면 이혼에 있어서 유책배우자의 유책행위로 인한 책임은 위자료지급으로 끝나지만, 약혼에 있어서 과실 있는 당사자는 위자료지급은 물론이고 재산상 손해까지 배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 이겠습니까. 자신이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예물예단은 고스란히 반환하여야 하면서도 자신이 교부한 예물예단은 반환 받을 수 없으니 그 책임이 이혼에 있어서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성과의 결혼 약속은 신중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당사자 쌍방의 합의하에 약혼을 해제하는 경우에는 서로 교환했던 예물 예단을 양측 모두 서로 반환해야 합니다.



약혼 해제 사유

① 약혼 후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② 약혼 후 성년후견개시나 한정후견개시의 심판을 받은 경우

③ 성병, 불치의 정신병, 그 밖의 불치의 병질(病疾)이 있는 경우

④ 약혼 후 다른 사람과 약혼이나 혼인을 한 경우

⑤ 약혼 후 다른 사람과 간음(姦淫)한 경우

⑥ 약혼 후 1년 이상 생사(生死)가 불명한 경우

⑦ 정당한 이유 없이 혼인을 거절하거나 그 시기를 늦추는 경우

⑧ 그 밖에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위 ‘그 밖에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관계된 판례를 소개하면, 판례는 학력과 직장에서의 직종, 직급 등을 속인 것이 약혼 후에 밝혀진 사안에서 이러한 사유가 약혼해제사유인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1995.12.08. 선고 94므1676 판결)

【판결요지】

【1】 약혼은 혼인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혼인의 예약이므로 당사자 일방은 자신의 학력, 경력 및 직업과 같은 혼인의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하여 이를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고지할 신의성실의 원칙상의 의무가 있다.

【2】 종전에 서로 알지 못하던 갑과 을이 중매를 통하여 불과 10일간의 교제를 거쳐 약혼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서로 상대방의 인품이나 능력에 대하여 충분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학력이나 경력, 직업 등이 상대방에 대한 평가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할 것인데 갑이 학력과 직장에서의 직종•직급 등을 속인 것이 약혼 후에 밝혀진 경우에는 갑의 말을 신뢰하고 이에 기초하여 혼인의 의사를 결정하였던 을의 입장에서 보면 갑의 이러한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한 행위로 인하여 갑에 대한 믿음이 깨어져 갑과의 사이에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인격적 결합을 기대할 수 없어 갑과의 약혼을 유지하여 혼인을 하는 것이 사회생활관계상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민법 제804조 제8호 소정의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 해당하여 갑에 대한 약혼의 해제는 적법하다.

【3】 '【2】'항의 경우 약혼관계가 해소됨으로 인하여 을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갑은 을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2】'항의 경우 을로서도 갑의 학력이나 직급 등을 시간을 갖고 정확히 확인하여 보지 아니한 채 경솔히 약혼을 한 잘못은 있다고 할 것이지만, 이를 가리켜 을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고 약혼의 해제에 대한 귀책사유가 갑에게 있는 이상 이러한 을의 잘못은 갑의 을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 참작할 사정에 불과하다.



2. 사실혼

【사실혼이란】

실질적인 부부로서의 공동생활을 하고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남녀관계를 사실혼 관계라고 합니다. 즉 사실혼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률혼과 차이가 있을 뿐 혼인의사를 가지고 공동생활을 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사실혼 배우자는 법률혼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까지 보호받을 수 있나?】

사실혼은 가족관계등록부에 공시되지 않기 때문에 성년의제, 배우자상속권, 친생자추정 등은 인정되지 않으나, 혼인에 준하는 관계로서 보호되므로, 부부간의 동거, 부양(부양료 청구 가능), 협조, 정조의무, 일상가사채무의 연대책임 등 부부공동생활을 전제로 하는 일반적인 혼인의 효과는 인정됩니다.

따라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아니하는 경우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고, 정조의무를 위반해서 부정행위를 하는 경우 사실혼관계의 해소요구와 더불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실혼관계가 해소되었을 때는 재산분할도 청구 가능하며, 제3자의 불법행위에 의하여 상대방배우자에 대한 생명침해의 경우, 배우자의 지위에서의 위자료청구권 등도 인정됩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사실혼 기간 중에 두 사람이 협력하여 모은 재산에 대한 재산분할청구가 가능하지만 사실혼관계가 한쪽 당사자의 사망으로 종료된 경우에는 그 상대방에게 재산분할청구권이 인정되지 않음에 유의해야 합니다(대법원 2005두15595 판결). 이 경우 사망한 당사자의 법정상속권자가 재산을 상속받게 되고, 사실혼배우자는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연금법이나 보험관계법령에서는 사실혼 배우자를 법률상의 배우자와 같이 취급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8조는 유족보상의 순위를 정하면서 근로자의 배우자에 '사실혼관계에 있던 자'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선원법 시행령,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도 유족인 배우자의 범위에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던 자'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제9조는 임차인의 사망시 '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던 자'에게 임차권의 승계와 관련하여 일정한 보호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혼 부당파기 자에 대하여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나?】

사실혼의 경우에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혼과 달리 공법적 절차 없이 언제든지 합의하에 또는 상대방에게 통보만 하고서 헤어지면 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사실혼관계를 파기하면, 사실혼관계 부당파기로 인한 정신적 손해(위자료)는 물론 재산적 손해까지 배상해야 합니다. 여기서 재산적 손해에는 그 사실혼관계의 성립유지와 인과관계 있는 모든 손해를 포함하는데, 결혼비용은 물론 결혼에 소요된 금액 모두를 포함합니다. 판례의 견해입니다(대법원 1989.02.14. 선고 88므146 판결).

한편 배우자의 부모 등 제3자에 의하여 사실혼이 파탄된 경우에는 그 제3자에 대하여도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실혼관계가 단기간 내에 종결된 경우 유책배우자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나?】

사실혼관계가 단기간 내에 종결된 경우 즉 ①의미 있는 혼인생활을 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단기간에 결혼생활이 파탄 나거나 ②사회적으로 부부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단기간에 결혼생활이 끝난 경우에는 법률혼에 있어서 혼인관계가 단기간 내에 종결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위자료나 재산분할만을 청구할 사안이 아닙니다.

즉 ①위자료나 재산분할은 물론이고 ②예물 예단의 반환, ③혼인비용상당의 손해배상, ④가재도구 등 혼수의 반환, ⑤주택구입명목으로 지급한 돈 및 주택의 인테리어비용으로 지급한 돈 전액의 반환 등 또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얼마의 기간을 단기간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인데, 1개월과 5개월을 단기간으로 본 사례가 있고, 1년 만에 파경에 이른 사안에서 1년의 혼인생활이 짧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사안이 있습니다. 그러한 판례의 입장을 참고하여 구체적인 경우에 따라서 Case by case로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혼적 사실혼】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이성과 사실혼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혼적 사실혼이라 합니다. 즉 사실혼관계에 있는 당사자들 중 적어도 일방이 이미 법률혼관계에 있다는 것이 일반 사실혼관계와 차이가 있습니다.

중혼적 사실혼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간통죄가 성립함은 물론 부정행위로서 이혼사유가 됩니다. 또한 사실혼관계가 어느 정도 법적 보호를 받는 것과는 다르게, 중혼적 사실혼관계는 그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중혼적 사실혼관계에 있는 자는 상속은 물론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등 그 어떠한 것도 청구할 수 없습니다.



3. 사실혼관계에 있는 일방당사자가 단독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방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72조는 '사실혼관계존재확인의 재판이 확정된 경우에는 소를 제기한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정한 경우 사실혼관계에 있는 당사자의 일방적 신고에 의하여 사실혼이 법률혼으로 격상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즉 사실혼관계에 있는 일방당사자는 상대방을 상대로 관할 가정법원에 '사실혼관계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여 판결을 받은 후, 그 판결문을 가지고 단독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사실혼을 법률혼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혼인신고특례법 2, 3조는 사실혼관계에 있는 당사자의 한쪽이 전쟁 또는 사변에 있어서 전투에 참가하거나 전투수행을 위한 공무수행 중에 사망한 경우에는 생존한 다른 한쪽이 사망한 당사자의 마지막 주소지가 있는 곳의 가정법원의 확인을 얻어 단독으로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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