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년 여성이 상담차 오셨다며 사무실로 들어오시는데, 그 여성분은 어딘지 모르게 많이 지쳐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분은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무능하고 무심한 남편에 두 딸 그리고 시집 안간 시누이 2명까지 모두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해오면서 결혼생활내내 시댁식구들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 분은 시집살이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시면서 연신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그 분은 시집살이가 심해서 주눅이 들고 심지어는 자존감이 없어져서 죽어버리고 싶기까지 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참고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의뢰인의 시집살이를 지켜보던 주위분들이 "답답하다. 왜 그렇게 사냐?"며 의뢰인에게 이혼을 권면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인의 소개로 우리 사무실을 찾아오신 것이었습니다.
의뢰인은 우리에게 그 동안 겪은 “지독한 시집살이”에 대한 말씀을 하셨지만 처음엔 사실 우리도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증거가 하나도 없는게 문제였는데, 그나마 의뢰인의 시집살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건 의뢰인이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보인다는 것과 손에 주부습진이 심해 보인다는 것, 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담하는 과정에서뿐만이 아니라 상담 후에도 한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도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어떻게 판사님을 설득시킬 수 있단 말인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진행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혹여나 혹을 떼려다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결과가 도래하지는 않을까?'하는 고민을 했고, 그런 부분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소송진행을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의 말씀이 너무 진실로 다가왔고, 뭔가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급기야 이혼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송이라는 것이 안되는 것을 되게 하고, 증거가 없으면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변호사가 할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는 두 번의 주말을 반납하고 하루에 5시간씩 총 20시간을 의뢰인과 대면하면서 사실관계를 정리해 나갔습니다. "살아온 이야기 한번 해보시죠"라는 식이 아닌, 의뢰인이 눈물을 흘리시며 일화들을 이야기하실 때마다 우리는 “언제 일이죠?” ,“그 때 남편은 뭐라 했습니까?” ,“그 일이 안방에서 일어났나요 아니면 거실에서 일어났나요?”라고 재차 묻는 방식으로 사실관계를 세세하게 정리해 나갔습니다. 정리된 글을 읽으면 마치 화면으로 영상을 보는 것처럼 읽힐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하게 정리하는 것 말입니다.
통상 변호사사무실에 가면 "내용을 써오세요....상대방의 답변서 또는 준비서면에 대한 의견을 써오세요.."라고 요청하고는 의뢰인이 써오는 글을 고쳐서 서면을 내곤합니다. 90%이상의 변호사가 사실 그렇게 합니다. 그럴꺼면 변호사를 왜 선임합니까? 의뢰인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논점이며, 무엇을 입증해내야 하는지 모르는데..... 변호사사무실만 가면 의뢰인보고 써오라고 시킵니다. 그게 무슨 변호란 말입니까? 그럴꺼면 나 혼자 소송하겠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차근차근 이야기를 이끌었더니, 의뢰인은 오래전 일도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기억해냈습니다. 통상 어떤 기억을 끄집어내도록 인도해주면 누구든지 세부적인 부분까지도 기억해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A4 용지로 28장에 이르는 본인 진술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의뢰인의 사실진술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의뢰인의 오랜 친구들과 면담을 시작했습니다. 4명의 친구들을 각각 만나서 3시간정도씩을 상담하고 각 친구들의 사실확인서를 완성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의도한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사진이나 녹음 하나 없지만 도저히 지어냈다고 볼 수 없을 만큼의 세세한 진술과 혼인기간 내내 그 긴 세월 동안 마음 고생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 왔을 베스트프랜드들의 진술로 객관성을 확보하여 소송에서 재판부를 설득해보자는 의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드디어 재판이 시작되었고, 의례히 그렇듯 남편과 시댁식구들은 우리 의뢰인이 가정살림에 엉망이었고, 가정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가지려고 노력을 안했으며, 게으르기 짝이 없다고 몰아세웠고, 시누이들도 덩달아 나서며 아이까지 빼앗아가려 들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상대방의 주장에 대하여 조목조목 받아쳐냈습니다. 의뢰인이 가사에 얼마나 찌들었는지 주부습진 진단서를 제출하고,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정신과 진단서를 제출하고, 주위 친구들의 일관성 있는 사실확인서를 제출하고, 구직활동을 증명하기 위해 새롭게 공부하는 자격증시험의 학원수강증도 제출하고....
그러다보니 판사님도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정도로 우리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워낙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보니 시어머니보다 더한 시집살이를 시킨 시누이들을 증인으로 소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누이들은 증인으로 출석해서 '의뢰인이 살림을 엉망으로 하였으며, 너무 게을러서 살림살이는 뒷전이었다.'는 식으로 증언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시누이에게 '김치가 냉장고 어디에 있고, 시어머니, 시누이의 속옷이 어느 장롱에 들어있는지'를 반문하며 답변을 못하는 시누이에게 그 답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앞선 20시간에 걸친 변호사와의 면담이 이런 사소한 곳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11년 결혼생활에 위자료 5천만원, 재산분할로 현재 살고 있는 주택가격의 50%(약 2억여원), 두 딸의 양육권과 친권, 양육비로 매달 11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억울했던지 판결을 받고도 양육비를 주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게 아닙니까? 그런 사람을 그냥 놔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남편의 월급을 압류하여 양육비를 받아냈습니다. 지금은 양육비를 잘 보내주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케이스이고, 더구나 확실한 유책증거가 없는 이혼사건에서 위자료 5,000만원을 받아내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의뢰인은 사건이 끝나고 담당변호사를 껴안고 한참동안이나 우셨습니다. 이겼다고 우시는게 아니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같이 마음 아파하며 들어준 사람이 처음이어서 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못난 자신의 편에 서서 힘들게 싸워주신 것이 너무도 고마워서 우신다고도 하셨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사무실 직원들도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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